타리크 알리, 수잔 왓킨스/1968 by sewits

작년 기호학 시간에 처음 들어본 1968년의 혁명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여느때보다 활발했던 학생활동은 여성, 노동자, 흑인 등 다양한 분야의 구습을 비판하고 새로운 질서를 열어나가고자 했다. 그 결과 몇몇 나라의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여러 곳에서 개혁이 시작되었다. 이 해에서부터 비롯된 개혁의 물결은 칠십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그 시기 우리나라에서는 박정희의 압제에 많은 사람들이 시달리고 있었다.

책의 많은 부분들은 역사서 혹은 다큐멘터리라고 봐도 될 정도로 사건의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묘사는 대부분 폭동에 대한 잔인한 진압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기득권층의 비인간성을 성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애초에 시위가 형성된 계기는 잘 다루어지지 않았다. 많은 사건들이 작은 시위에서 일어난 무력충돌로 인한 대규모 시위의 봉기 그리고 이어지는 강제진압의 수순을 따르고 있었다. 자본주의, 공산주의와 같은 이념을 뒤로 한 채, 세계 각지에서 위와 같은 봉기가 일어났다. 

혁명 후 4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당시 시위가 벌어졌던 한 곳의 낙서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처럼 68세대의 대부분은 현재 리얼리스트로써,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386세대가 개혁에 앞장선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역시도 현재 40대의 문턱에 들어서서 한 가장을 책임지고 있으며 더 이상의 변화는 바라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88만원 세대에서 지적했듯이 변화를 일으킨 우리의 선배들은 자신들에게 생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더 이상의 변화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생기면 소극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대규모 봉기, 단체 파업 등이 더 대단해 보인다. 요사이도 문제들이 툭툭 불거지고 있는데 다들 적당적당히 해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재작년에 소고기 수업과 관련하여 시위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경찰이 물대포를 쏘는 등 68년의 일과 유사한 현상이 발생했다. 하지만 시위는 대규모로 진척되지 않았다. 그전보다 파편화된 개체들은 자기 앞날을 걱정하기 바빠 다른 곳에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68년에 대부분의 시위를 구성한 절대다수는 학생들이었다. 고등학생들은 대입에, 대학생들은 취업에 목숨을 걸고 있는 현실에서, 한갓 시위에 참여하는 일은 무모하고 쓸데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60 ~ 7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대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많은 수가 쉽게 취직하고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허나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정치적인 일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처럼, 올 봄 우리에게는 다시 위대한 기회가 주어졌다. 다시 한 번 우리 손으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 이 봄은 곧 끝날 것이다. 그리고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겨울이 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이천 어 선언문 中 -